걷는 이유들.
몸이 가벼워진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내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주변의 풍경이 보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걸으려 하는 나는 얼마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름아닌 하정우 배우다.
나는 하정우 배우에게서 추격자(2008개봉)의 모습을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추격자를 보고 몇 주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살던 동네도 골목이 많아서 집에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그 후 영화를 몇 편 더 보아도 그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멋진하루」 에서도 4885가 전도연을 따라다니는 걸로 보일 정도였다.
그 무서운 이미지를 사라지게 한 건,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이었다. 모두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과 함께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하정우 덕이다. 더 테러 라이브 마지막 장면에서, 환멸을 느끼는 윤영화 앵커의 표정은 소름이었다. 터널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3주 만에 구조되고 세상을 향해 했던 발언.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이었고, 내가 외치고 싶은 말이었다. 이제는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나와 같은 국민의 스멜.
그런 그가 걷기를 예찬한다는 건 다큐영화 「577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577km를 걷는 하정우와 배우들. 웬만한 체력과 근성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는 매우 인간적이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든 구성원을 챙겼다. 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책에도 그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반갑게 읽었다. 걷기도 더 좋아졌다.
577프로젝트에서 기억에 남는 배우가 있다. 대원들 모두를 속인 한성천 님. 그는 영화 오디션 장면에서 이번 대장정을 성공하지 못하면 자기 인생도 끝이라며 간절함을 표현했었다. 그리고 끝까지 걸어 성공했다. 실제로 걷기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책 곳곳에서도 등장하는 그의 사진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그는 하정우의 절친이자 걷기 멤버였다. 그 후 계속해서 함께 걸었구나.
하와이를 걸을 수는 없지만, 걷기를 루틴으로 만들어 본다. 책에서처럼 누구나 20분 정도 걸을 시간은 있다. 아주 짧게라도 걸으려고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상대적으로 시간에 자유롭지 못한 직장인도 걷는 사람이 된다. 매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걷는다. 번아웃이 왔을 때도 몸의 리듬을 유지하도록, 늘 걷듯이 걷는다. 돌아보았을 때도 후회 없도록. 몸과 마음의 건강이 자산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성천 배우도 그렇게 인생을 바꿔가지 않았을지.
하정우는 지금 연기와 감독, 그림 그리기 등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걷기에서 독서모임까지 좋아하는 걸 만들어서 하고 있다. 뭐든 일단은 해 보는 추진력과 도전정신이 그의 직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겁을 먹거나 안 될 거라 앞선 걱정을 하기보다는 그냥 돌진해보는 것이 훨씬 더 성장하기 쉬운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든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해야 한가는 한다는 것이다. 늘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하정우는 함께해준 사람들을 숲이라고 했다. 서로에게 양분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지금, 하정우가 사는 법에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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