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업무 스트레스와 반복되는 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출구여서 여행만을 기다리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게 돼버렸다. 다시 자유롭게 다닐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우리들의 여행은 얼마나 소중했던가. 언어도 안 되는 낯선 곳에 갈 계획을 짤 때의 두근거림, 비행기 이륙할 때의 간질간질함과 착륙할 때의 두려움..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은 쉽게 누릴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장기화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특별하게 여행하던 그때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가고 싶거나 가보았던 곳들에서 있었던 일들을 편지로 읽으니 답답했던 기분이 살짝 뚫리면서, 코로나는 이제 끝이 났고 우리는 다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상상했다. 여행중인 친구가 쓴 엽서를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같이 여행하는 기분도 들었다. 여행 가서 마주친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들과, 여행지에서 샀던 물건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경이로운 풍경들, 여행에서 생각했던 사람들.. 누구나 여행 가면 쌓이는 추억들이 이 책 속에서도 아주 자세하게 담겨 있었다.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짧은 일정 내에 욕심 내서 이곳저곳 미션 클리어하며 다니느라 제대로 추억할 수 없는 것도 이제 와서 느낀다. 기억에 남는 건 오히려, 관광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귀한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면서 추억 좀 많이 기록해두는 건데. 특히 해외여행은 어쩔 수 없이 더 욕심부리는 것 같다.

사진첩을 뒤지고, 그동안 다녔던 곳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동전이 없어 버스비를 내지 못할까 불안해했던 후쿠오카의 여름날이 생각난다. 거리에 따라 요금이 올라가는 걸 모르고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요금이 빨리 올라가서, 버스 운행 중에 기사님께 다가가서 저 지폐밖에 없는데 어떡하죠? 물었다. 기사님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고 어쩌면 승객들도 당황했을 것이었다. 다행히 기사님은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라고 친절하게 얘기해주셨고,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뒷좌석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오시더니 천 엔짜리 지폐 다섯 장을 펼쳐 보이며 바꿔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고맙다고 계속 인사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것은 모두 그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들이다. 그런 소소한 추억들은 책 표지처럼 여유로웠던 날들에서만 가능했다. 이 시국이 끝나 다시 여행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더 천천히, 무계획으로, 더 오랫동안 현지에 스며들게 다녀오고 싶다.

여러 사람들에게 쓴 편지 중에 특히 만춘서점 사장님에게 보낸 편지는 연관 있는 사연이 있었기에 더욱 현실감 있게 읽었다.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여행하다가 우연히 찾아가게 된 만춘서점에서, 직원분과 취향이 맞아 한참 동안 수다 떨던 때가 기억난다. 북토크나 콘서트 등, 그때 그 직원분이 이야기해준 것들도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서점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우리의 만춘」을 나머지 여행기간 내내 들었던 것도 다시 떠올렸다. 취향 저격인 책들로 가득했던 서점. 고양이들. 행복했던 순간이 이렇게 글을 통해서 다시 생각났다.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여행 장소도 바뀌었다.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던 일도, 생각하거나 기억에서 지우던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렇게 책을 다 읽어가는데 불현듯 코끝이 찡해지더니 곧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지금 이 순간 카페에서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책을 읽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이 상황이 너무 가엽고 답답하다. 그동안의 여행들은 또 어찌나 커 보이고 그리운지. 앞으로 두 번 다시 여행을 못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열심히 버티는 지금, 힘내고 있는 지금,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기를 기다리는 지금 또한 소중하다. 우리는 상황에 맞는 여행을 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 하나, 냄새 하나라도 더 간직하려 해 본다. 좋아하는 곳의 땅을 밟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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