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첫 책은 이걸로.
집약적으로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한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쾌감을 느끼는 순간에는 시간을 참으로 알차게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방법 중에 하나이고, 굳이 '공부'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게 공부였구나 한다. 자발적이냐, 의무적이냐에 따라서 과정도 결과도 다르다. 공부를 하는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성취감, 그 결과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삶의 낙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나에게 있어 공부란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보고 싶었고, 공부라는 단어와 함께 새해를 시작하고 싶었다.
[사유와 성찰]“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밥을 먹다가 주변 사람을 긴장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음식을 한가득 입에 물고서 소리 내어 말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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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란 무엇인가. 아직 써먹지는 못한 말이지만 속으로 핵사이다를 마셨던 기억. 그 느낌 그대로 이 책으로 이어가고 싶었고, 실제로 매우 이어졌다. 서론부터 중간중간 나오는 코믹한 풍자, 상상도 못 한 문장들로 계속 웃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있어서 적어본다.
p.14
입시와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될 때, 아마 한국인은 양념치킨보다 더 멋진 것, 이를테면 잘 양념된 삶을 이루고 향유하게 될 것이다.
나의 삶은 어쩌면 이제서야 슬슬 맛있게 양념되고 있는 단계라 생각한다. 그냥 학교에서 하라고 하는 것들을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외우는 과목들이 어릴때는 왜 그렇게 싫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싫어했던 역사 공부조차도 그냥 좋아서, 알고 싶은 것들이어서 공부하는 요즘이 훨씬 더 재미있고 남는 것도 많다.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므로, 갖은 재료들이 잘 버무려져 가슴속에서 조화로운 향으로 머물게 되는, 미래가 궁금해지는 삶이라고 이제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앞으로 보고 듣고 경험할 새로운 것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몹시도 두근거린다. 그게 바로 아래 문장에서도 말해주고 있었다.
p.82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 그것은 오감만족보다 더 사랑스럽다. 나는 나를 아낀다는 그런 느낌과도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설레는 거겠지. 우리는 각자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돌보고 있다. 명상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기도 한다. 성장의 기운을 한 번 느끼기 시작하면 그 쾌감을 또 만끽하고 싶어서 또다시 공부를 한다. 공부는 몸에 좋은 것이다.
p. 84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내가 표현하고싶은 건 이 단어가 아니야.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어서 가끔씩 답답해 했던 기억들이 있다.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래 이거야! 하는 느낌으로 말하고 명확하게 설득하고 표현하고 싶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해상도가 높은 문장'을 언제쯤 말하고 쓸 수 있을까? 고급진 단어는 알지도 못하고, 고급진 단어를 쓴다고 내가 원하는 표현과 100퍼센트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꾸미지 않아도 정확한 표현을 알고 싶다. 공부를 함으로써 더 많은 언어를 알게 되고, 그 언어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고 기록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나날이 있을까? 하루하루를 아깝지 않게 살고, 있었던 일들을 표현하는 명확한 말과 글을 찾아가는 공부라면 천년만년 하고 싶다.
p.141
프란츠 카프카는 독서가 마음속에 얼어붙어있는 바다를 깨는 일이라고 했는데, 책을 대충 읽어서 얼음이 깨질 리가 있겠는가. 얼음을 가르려면, 정독을 해야 한다.
읽는 책마다 '책은 도끼다'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 만약 독서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어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카프카의 말도 아주 이후에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과 독서 취향을 공유하면서 조금 더 빠르게 낯선 책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독서모임은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얻게 되고, 서로의 이야기가 모여 공감대가 커지기도 한다. 독서모임은 보고 듣는 인문학이고, 정독하는 과정이다.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다음 책을 결정짓기도 한다. 다음 책은 문학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장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독서 스펙트럼이 조금씩 넓어지고 도끼 책도 발견하면서 나는 성장한다.
독서모임 미림;謎林 _ 책의 숲, 그 안을 함께 거니는 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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